[7권] Part 03 - Chapter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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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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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믿음의 푯대를 굳게 잡고 

Chapter 27. 섭리의 다림줄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4:10)

 

하나님의 6천 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동안 큼직큼직한 일들이 언제나 한 사람을 통하여 시작되어 처음에는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를 받았으나, 얼마 지나고 보면 그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된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들어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았고, 야곱 한 사람을 내세워 당신의 백성을 탄생케 했으며, 모세 한 사람을 통해 선민의 대이동을 단행하고 율법을 선포하셨습니다. 바울을 등용하여 할례를 폐지시킬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여 2천 년 동안 실시해 온 할례를 폐지시키라고 지시했을 때,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바울 자신부터가 깜짝 놀라 자기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지시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쉽사리 먹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야말로 난사 중의 난사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파란과 우여곡절을 겪어도 결국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처음에 할례 폐지에 큰 거부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2천 년에 걸쳐 수천만이 실시해 내려온 뿌리 깊은 전통을 어느 한 사람의 말에 따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만일 아브라함 이후 2천 년이 지나서가 아니라, 아브라함 다음 세대에서 어떤 종을 통하여 할례를 폐지하라고 지시했더라면 문제는 비교적 손쉽게 처리되었을 것입니다. 할례를 실시하라는 지시를 받은 아브라함과 할례를 폐지하라는 지시를 받은 그 종이 마주앉아

 

아브라함 형, 당신에게는 할례를 실시하라는 지시가 왔지만, 나한테는 이제 이방인에게도 전도의 문을 열어야 하니 할례를 그만두라는 새로운 지시가 왔습니다.” 하고 말하면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아브라함이 비교적 간단히 이것을 승복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직 전통과 관례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징표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율법이라고 해서 받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경우에는 일이 매우 어려워지게 마련입니다. 할례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을 지키는 것이며,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주님과 바울 사이에 맺은 언약을 지키는 것으로, 오늘날 우리의 안목으로 보면 후자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되지만 바울 당시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수가 그렇게 많아도 끝까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은 사람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 당시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들어온 사람은 겨우 120명이었습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대개 예수를 도깨비 내지 역적, 아니면 비극의 주인공으로 몰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감람나무를 두고 생각해 봅시다. 지금은 우리가 감람나무의 소리도 입 밖에 내기가 거북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람나무를 증거해야 합니다. 감람나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세운 종이요, 여러분은 그 그늘에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감람나무를 증거하는 것은 바울이 할례 폐지를 주장하는 일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고 천당 가면 그만이지, 그밖에 어떤 특정인을 거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2천 년 동안 굳어버린 고정관념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터운 고정관념의 벽을 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믿기만 하면 된다는 바울의 신학 체계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왔으며, 오늘날 수억의 신도들이 또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나는 40억 인구 중에서 앞선 감람나무의 그늘에 불러들인 9만의 가지들을 다시 다듬어 세우라는 지시를 받아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무심히 방치할 수 없는 것은 감람나무의 가지들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세우시고, 당신이 기대했던, 당신의 특별한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이긴자 감람나무가 나타나면 섭리의 양상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즉 감람나무가 은혜의 다림줄이 되게 마련입니다. 섭리의 파이프가 달라지면, 그 은혜의 줄기를 찾아야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은총이 이 줄기를 통해 쏟아지기 때문입니다.(4:12)

 

이 감람나무가 바울 다음 세대에 나타났더라면 사람들은 좀 더 쉽사리 감람나무를 받아들여 그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과 바울의 언약 아래서 예수를 믿어온 지 2천 년이 지나서 감람나무가 나타나 몇백 명을 상대로 이렇다 저렇다 하니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그늘에 모인 수가 많건 적건, 이것은 엄연히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요 섭리인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큰 역사는 처음에 작은 일의 날이라고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 상례입니다. 주님 당시에 기성교회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수와 주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를 비교해 보십시오.

 

또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시작한 당시에 그를 따르는 사람의 수와 베드로를 따르는 사람의 수를 비교해 보십시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어느 쪽이 참 길로 생각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 아래 사람들이 바글거린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때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직접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나는 비로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든 싫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이상, 나는 그 지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