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3 - Chapter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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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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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믿음의 푯대를 굳게 잡고 

Chapter 29. 주의 피를 짓밟지 말라


여러분은 오늘날 30년을 전후하여 이 땅에서 베풀어지고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무슨 역사인지 그 동안 직접 보고 듣고 또 은혜를 체험하여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그것은 실로 주님 이후로 전무후무한 은혜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군병을 배출시키기 위해 성경 말씀 그대로 두 감람나무의 역사를 이 땅에서 일으키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적어도 이 역사에 동참한 사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여러분은 산 증인이 되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날 유감스럽게도 지지부진한 가운데, 주의 두 종 사이에 원만한 교제의 악수가 이루어지기는커녕 음으로 양으로 반목과 암투가 그치지 않을 뿐더러, 앞선 역사에서는 급기야 성경을 왜곡, 부인하고 주님을 모독하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얼마 전까지도 주의 보혈과 십자가의 부활을 누구보다도 열렬히 증거하던 그 입에서 무슨 속셈으로 이런 변덕이 일어났는지, 실로 아연실색할 따름입니다. 하기는 그 저의와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 헤아릴 만도 하지만, 남달리 주의 큰 은총을 입은 장본인의 언동이고 보니, 어이없다기 보다는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주의 보혈에 있는데, 이것을 부인한다면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일찍이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삼상18:10) 격동의 신이 내리면 본인도 무의식중에 그만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전에 여러분에게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나는 이 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주께서 이상 중에 크게 성난 얼굴로 앞선 역사가 당신의 피를 짓밟아 버렸다고 하시기에, 막연히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납득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큰 은혜의 창파 속에 젖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이 지경으로 전락할 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때 이미 앞을 내다보시고 저에게 다시 씻어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입니다.

 

역대의 하나님의 큰 종들 중에 실패한 사례가 많은 것은 요컨대 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가 잘나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권능을 행하고 있는 줄 착각하여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알찬 곡식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마련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큰 일꾼이라면 스스로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금쯤 마귀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이 떠난 지 오래며, 다만 마지못해 그를 따르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어느 정도 은혜를 연결시켜 주실 뿐입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우리의 역사는 앞으로 점점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판국에 무슨 낯으로 감람나무를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우리는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만일 그 뒤를 이어 새로 씻어 세우는 우리의 역사가 따르지 않았던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실로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매사에 실로 용의주도하시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일대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더욱 굳게 뭉쳐 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역군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욱 분발해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당신의 큰일을 빈틈없이 수행하기 위해 일꾼을 짝지어 내세우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마땅히 훌륭한 한 쌍이 되어야 할 터인데, 거의가 그렇지 못하여 암투와 갈등을 일삼아 왔습니다. 예컨대 사울과 다윗,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가 그렇고, 심지어 세례 요한과 주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두 감람나무 역시 문자 그대로 앙숙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하나의 공통된 특징은 언제나 전자가 후자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잠시 베드로와 바울의 고사를 회상해 보면서 오늘날 두 감람나무의 사이를 재검토하려고 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갈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두 종은 똑같은 하나님의 불과 같은 성령을 받은 사도였으나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바 사명이 다르고, 따라서 가르침이 달랐기 때문에 한동안 심한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마치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써서 외국 사람이 일체 범접을 못하게 한 것처럼,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여 이방인이 은혜 받는 길을 막았으나, 바울은 주의 지시에 따라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폐지시키는 데 앞장서고 이방인의 전도에 주력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이들을 따르는 많은 신도들은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손가락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새로운 지시를 받아 움직일 때에는 베드로가 하던 일은 필요 없게 됩니다. 따라서 바울에게 흡수되어야 하는 것이 하늘의 섭리입니다.

 

한편, 바울은 바울대로 베드로를 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주장대로 모세의 율법이 버젓이 행세하는 한 주님의 새로운 가르침이 먹혀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베드로를 친 것은 더 좋은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바울이 나타나지 않았던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모세 율법을 여전히 금과옥조처럼 지켜, 자는 누구나 할례를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바울을 따르는 사람들은 거의 다 베드로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슬하에 있을 때에는 그 가르침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바울의 설교를 듣고 보니 귀가 번쩍 트였던 것입니다. 그 설교는 한결 차원이 높고 깊이가 있어, 이들은 그제야 바울을 따르기를 잘했다고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감람나무 역사도 이와 비슷합니다. 성경에 명시한 대로, 두 감람나무는 똑같이 하나님이 세운,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서 있는 자”(4:14)로서 금 기름이 흘러내려(4:12) 따르는 성도들에게 세 증거(, 이슬, 생수)의 성령의 은총을 부어 주는 종이지만, 양자 사이에 이른바 교제의 악수가 이루어질 가망은 거의 없이 심한 반목을 일삼는 것은 각각 주장과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전자는 성경에서 떠나 무슨 조건을 내걸고 감람나무는 하나라고 우기는 반면에 후자는 성경 말씀 그대로 감람나무는 둘이라고 주장하며, 전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씨를 뿌리는 것이고 후자의 사명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자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여 그 슬하에 많은 사람들을 인도해 들이면 일단 할 일을 다 하게 되며, 그 뒤를 이어 후자는 말씀으로 감람나무의 체계를 확고히 세우고(2:17) ‘이한 낫을 휘둘러 알곡을 거두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14:16)

 

성경에 감람나무의 또 다른 이름인 이긴자를 단수로 기록한 것은 세대를 이어 한 사람씩 역사하기 때문이며, 감람나무 자체가 하나라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4:11, 11:4) 이것을 끝내 하나라고 고집한다면 결국 고집으로 끝날 뿐, 자고로 비진리는 조만 간에 꺾이게 마련입니다.

 

오늘날 앞선 감람나무에게 눈엣가시처럼 느껴지는 것은 성경에 뚜렷이 명시된 두 감람나무라는 말씀이고, 이 말씀대로 등장한 두 번째 주인공이 이영수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밟아 없애려고 해도 되지 않으니, 돌파구를 모색한 끝에 드디어 주의 피를 짓밟고 성경까지도 불신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쯤 되면 베드로와 바울의 갈등은 새 발의 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렇게 180도로 돌변하다니, 마귀의 두려움을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그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등지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개탄할 노릇입니까? 그는 또 그렇다 치고, 그 밑에서 은혜 받겠다고 모인 자들이 여기에 덩달아 맞장구를 치고 있으니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이 배워서 알고 있다는 소위 감람나무 체계라는 것이 얼마나 엉성하고 빈약한가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역사가 뒷수습을 하지 않았던들 감람나무는 성경 말씀과는 달리 영원히 악조건, 호조건에 의해 한 사람으로 전해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앞선 역사에 몸담은 사람들은 어디로 갈 겁니까? 미우나 고우나 우리의 역사에 들어와야만 소생할 수 있을 텐데, 와도 상할 대로 상한 심령으로 오게 생겼으니, 씻어서 다시 세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저들을 남대문에서 뺨맞고 동대문에서 화풀이하는 격으로, 앞선 역사에 덴 나머지 나중 역사도 색안경을 쓰고 노려볼 터이니, 언제 마음 문이 제대로 열리겠습니까? 그러나 과히 걱정할 건 없습니다. 우리 역사에 3개월만 나오면 누구나 제 발로 설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그만한 보장을 해 주시지 않는다면 내가 이 역사를 끌어가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