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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1.13본문
Part 04. 길을 찾아서
Chapter 30. 하나님의 섭리에서의 이긴자
하나님께서 만유의 회복을 위한 크신 경륜을 이루시려고 근 6천 년 동안 역사해 오는 가운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시는 주님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많은 일꾼들이 등장하지만, 그 사명으로 보아 이 중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담당한 종이 성경에 예언된 이긴자 감람나무입니다.
그는 실로 주님의 손발이 되어 하나님의 성사업을 땅에서 마무리 짓는 큰일을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과 여러 모로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고한 주님이 땅에 오시자 하늘과 땅의 여건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0-21)
이것은 주님과 이방의 사마리아 여인이 주고받은 대화의 한 토막입니다. 이 여인은 주께서 한번 보시고, 남편이 다섯이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남편이 아니라고 지적하자, 주님을 대뜸 선지자로 볼 정도의 지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에게 주목할 만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리아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보통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야말로 벼락 맞을 노릇입니다. 그것은 실로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즉 주님이 오셨기 때문에 전에 드리던 제사는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하늘의 조건이 이미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에서는 이것을 모르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렇게 정성껏 제사를 올리고 간절히 기도하면 받아주시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슴을 치면서 간구해 봐야 헛수고에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혁명기가 되면,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길을 반드시 열어 놓습니다.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않으리로다.”(사28:16)
즉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는 사람은 큰 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고 못 믿고 간에 도매금으로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주님이 오시지 않은 것만도 못합니다. 차라리 주님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전과 같이 염소나 비둘기를 잡아 제사를 드려 죄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이럴 때는 지상에서 하나님을 섬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귀찮게 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교류를 차단했는데 땅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을 부르니 얼마나 딱한 노릇입니까? 주님을 통하지 않는 기도는 상달이 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섭리가 무서운 것입니다.
주님은 땅에 오셔서 당신을 증거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방법으로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초인적인 희한한 능력을 나타내자 사람들이 구름 떼같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붙잡혀 빌라도 앞에서 무참히 당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럴 수 있나?’ 하고 다 떨어졌다가,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러면 그렇지!’ 하고 다시 모여든 수가 500명,(고전15:6) 이들 중에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음을 다해 간절히 기도한 성도는 불과 120명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성령이 임했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갖은 연단과 시련 속에서 참고 견디는 자에게 축복이 임하게 마련입니다.
120문도들은 성령을 받은 후, 처형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목숨을 내걸고 증거하여 기독교의 기틀을 세우는 역군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연단에 연단을 거듭해 온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령은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모처럼 귀한 하늘의 선물인 성령을 받아도 쏟아버리거나, 그것도 모자라서 짓밟아 버린다면 하늘에서는 주시지 않느니만 못하고, 장본인은 받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마땅히 받은 값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생각과 말과 행실이 달라져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길은 자기를 이기는 데서 출발합니다. 신앙인은 남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선한 싸움’이라고 합니다.
이긴자 감람나무의 시대도 신앙 혁명기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오랜 역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여건을 주의 지시에 따라 땅에서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정하신 원대한 뜻이요, 또한 섭리입니다.
여러분은 이긴자 감람나무가 영적으로 무슨 권세를 쥐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는 주께서 죄를 씻어 세운 종으로, 어딜 가나 주께서 동행합니다. 다시 말해서 빛이 항상 그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루 24시간 내내 모세와 동행한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 어둠이 틈타지 못하는 것은 주의 빛 때문이며, 결코 인간 자체가 잘났거나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빛은 마귀를 물리치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그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도, 심지어 옥중에서도 주께 간구해서 생수를 전해주고, 그 생수로 죽은 자의 시체도 아름답게 변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권능만 신기해하고 그가 마지막 마무리 짓는 종임을 모르고 따른다면 이긴자 감람나무의 가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치 주님의 이적을 보고 놀라면서도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모르고 따르면 메시아의 양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에서는 사도 시대 이후 불과 같은 성령을 내렸으나, 이긴자 감람나무가 나타나면 생수의 성령을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요7:3839) 그만큼 성령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불과 같은 성령을 받은 사람은 순교해야 지성소에 갈 수 있으나, 생수의 성령을 받아 잘 간직한 사람은 순교하지 않아도 지성소에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수는 죄를 씻는 재료이기 때문입니다.(슥13:1) 이 섭리 안에 들어오지 않고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여러분이 받는 은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기성교회에서 가장 열심히 믿는 분들을 데려다가 나한테서 한번 안찰을 받게 해보십시오. 결과는 보나마나 뻔합니다. 왜 그는 그토록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리는데 그렇게 괴로워하게 될까요? 부딪치는 세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영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아닌지 시험해 보라고 일찌감치 가르친 것입니다.(요일4:1)
그리고 여러분, 썩어 가는 송장을 놓고 깨끗이 변화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철야하면서 기도하여, 되나 안 되나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이것은 이긴자 감람나무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무슨 수로 어느 누구도 못하는 권능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주시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이 역사에 동참하기 전에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섭리를 짐작이나 했습니까? 그럴싸하게 말하는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을 뚫지 못하고 그 변죽이나 울리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것 역시 그렇습니다.
내가 얼마나 유식하다고 하나님의 오묘한 말씀을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거침없이 드러낸단 말입니까? 가르침을 받았으니 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이영수는 욕해도 이영수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내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인기가 땅에 떨어진 감람나무를 들먹이기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도 사람인데, 감람나무의 감 소리도 입 밖에 내기 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니 어떡합니까?
세상은 우리 역사를 사이비니 뭐니 하고 손가락질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니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왜 여러분이 약해지고 떨어지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는지 아십니까? 다른 데 가도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나는 눈 하나 까딱 않습니다. 몇 사람 떨어진다고 우리의 역사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저는 세상 욕심이 없습니다.
주의 종이 세상 것을 탐내고 미련을 가지면 하나님의 일을 해내지 못합니다. 이 세상 부귀영화는 마귀가 쥐고 있습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 섬기는 사람보다 훨씬 축복을 많이 받고 잘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안개와 같은 목숨 하나를 위해서입니다. 여기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빛과 어둠의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환난을 자기 신앙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평탄한 가운데서는 큰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궁핍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박차고 나가야 합니다. 이때 우리의 푯대는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쓰라린 고통을 생각하면 못 견딜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여러분의 언동을 살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거두는 역사이기 때문에 거센 바람이 닥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 속에서도 우리 역사는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화를 복으로 바꿔놓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