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4 - Chapter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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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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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4. 길을  찾아서 

Chapter 32.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가 자기를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한 자기가 자기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아 논란거리가 되었을 때, 사실 여부를 제일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장본인 자신입니다. 그러나 인격이나 성품을 헤아리는 마당에서는 남이 자기보다 훨씬 정확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누구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의 인간됨을 환히 들여다보지만 자기 자신의 됨됨이는 잘 모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기에 철인(哲人)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실수나 결함은 눈에 잘 보지만 자기의 그것은 잘 의식하지 않습니다. 설사 의식해도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내어 이것을 합리화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가 일쑤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에게는 너그럽지만 남에게는 가혹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이 빠지기 쉬운 큰 함정입니다. 그리하여 형제를 예사로 미워하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범죄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종들과 회계하려던 어떤 주인의 비유를 들어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주인이 1만 달란트 꿔간 종의 빚을 탕감해 주었는데, 이 종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을 꿔간 사람이 빚을 갚지 않는다고 그를 옥에 가두자, 주인이 화가 나서 종에게 탕감해 준 빚을 도로 받기 위해 종을 옥졸들의 손에 붙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5) 하고 덧붙여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성경 구절을 자주 읽으면서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를 깊이 알아야 합니다.

 

형제의 실수나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무지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모르는 데서 오는 폐단인 것입니다. 즉 자기가 어느 누구보다도 큰 죄 덩어리이며, 주의 보혈의 공로로 깨끗이 씻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남의 사소한 허물을 감히 탓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면 누구를 막론하고 죄의 자식이요, 허물 투성이며, 새까만 죄 덩어리인 점에서는 오십 보 백 보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미워하고 시비할 건더기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체하고 남을 미워하고 비난할 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소롭겠습니까? 이런 자는 주께서 탕감해 준 빚을 도로 받아 가는 것입니다. 즉 그가 아무리 잘 믿고, 십일조를 잘 내고, 새벽 기도를 열심히 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눈 밖에 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는 자기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주지 않고, 자기 죄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으려고 한다면 이런 얌체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죄의 빚을 탕감 받았으니, 나에 대해 형제가 저지른 어떤 죄의 빚인들 탕감 못할 게 무엇이 있겠느냐는 마음이 참으로 우러나, 그 죄를 용서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주의 종으로서 큰 사명을 맡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주기도문에 저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남에게 욕먹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탕감 받은 원죄와 유전죄, 그리고 자범죄에 비하면 남이 나에게 저지른 죄는 새 발의 피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중심으로 솟아나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자기를 부당하게 해치려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 상례요,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 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 기독교 윤리입니다. 그리고 이 윤리에는 인간의 본질상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새까만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51:5)

 

여러분이 은혜를 받고 못 받은 것은 형제를 미워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대뜸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내가 형제를 시기하고 미워하지 않았나, 한 번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자기가 은혜를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자기가 형제를 시기하고 미워한다면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이며, 따라서 기도에 응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100% 믿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용서와 용납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은 불의를 용납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설사 상대방이 자기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은혜 안에서 인간의 약점을 너그럽게 헤아려 용서하고 그 책벌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용서는 약자의 윤리가 아니라 강자의 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