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5 - Chapter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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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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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5. 섭리 안에서 

Chapter 45.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백성


- 모세와 다윗의 행적에서 -


하나님은 우리가 머릿속으로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우주의 창조주가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재자십니다. 다만 몸소 우리 눈앞에 나타나 직접 치리하지 않는 것이 세상 통치자와 다를 뿐입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회복하시려는 당신의 큰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종을 통하여 성령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치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이란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일꾼을 가리키며, 백성이란 그 종을 따르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즉 종은 지상에서 택한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며, 백성은 그 슬하에 부름을 받은 믿음의 식구들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는 일종의 주종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예컨대, 선지자 이사야와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가 그렇고, 사도 바울과 그 추종자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이사야나 바울을 내세워 그 백성들을 치리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종이 당신의 지시에 따라 백성들을 인도하고, 백성들은 그 지시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신의 성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 공통된 과업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듯 양자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종이 아무리 위대해도 백성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눈 밖에 나고, 종이 위대하지 못해도 백성들이 잘 협조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를 모세와 다윗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억하고 들어 쓰신 위대한 종이었습니다. 그는 권능도 권능이지만 성품이나 학식에 있어서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실패의 종이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순종과 협조보다도 불평과 원망을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목이 좀 말라도 모세에게 불평하고, 배가 좀 출출해도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여간 거슬리는 일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큰 지장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름부음을 받은 종과 그렇지 못한 일반 백성의 차이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 아니라면 그를 따르는 백성들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지만,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사명을 맡기고 내세운 종일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특히 그를 가까이 보필하는 측근일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모세는 불행한 선지자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각 지파 중에서 족장(族長)된 자 한 사람씩 가나안 땅에 보내어 그곳을 사전에 탐지하게 했을 때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의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세에게 등을 돌렸던 것입니다.

 

이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 온 회중이 모인 자리에서 모세에게 한 보고가 걸작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가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올 정도로 그곳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미리 축복한 땅임을 알면서도,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그곳 백성은 모두가 장사요, 자기들은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밖에 되지 않으니 쳐들어갔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들은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14:2) 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영도자를 새로 뽑아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설쳤으며, 심지어 왜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14:3) 하고 하나님까지도 원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되니 모세는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회중 앞에 납작 엎드린 채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섰습니다. 이들은 이렇듯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모세를 옹호하고 회중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 동안 두루 돌아다니면서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시면 반드시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할 것이 못됩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14:7-9) 말을 마치자 회중은 박수는커녕 오히려 미친놈의 잠꼬대로 알고 돌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광경을 잠깐 머릿속에 그려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열 두령과 그 백성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철부지였는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내려다보시고 모세에게 말씀했습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14:11-12)

 

모세에게 무서운 통고가 내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서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는 대목에 유의 해야겠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토록 아끼고 기대하시던 당신의 백성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모세를 내세워 새 역사를 펴나가겠다는 두렵고 떨리는 선고였습니다.

 

이번에는 모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간구했습니다.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해 내셨거늘,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한 사람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열국이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구하옵나니 주의 자비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해 주옵소서!”(14:13-19)

 

참으로 이치에 닿는 훌륭한 기도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위대한 영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는 자기 자신보다도 자기를 따르던 백성들을 먼저 염려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말대로 저들을 사하노라. 그러나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하리라.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라.”(14:20-24)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 자신도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한때나마 위로를 얻으려는 궁여지책으로 이방인 구스(오늘의 에티오피아)의 여인을 취하였습니다. 이것은 율법에 저촉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요 율법의 선포자로서 이 율법에 구속을 받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이방 여인을 취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이 못마땅하여 쑤군거리고,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은 직접 모세를 비방하고, 하나님께서 모세하고만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도 말씀을 주신다고 기고만장했습니다.(12:2)

 

인간의 생각으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며, 이들이 모세를 비난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한 민족의 지도자로서 자기가 선포한 율법을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백성이 어떻게 이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견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을 불러서 말씀했습니다.

 

모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를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12:8) 하나님이 말씀을 마치자 미리암은 갑자기 문둥병에 걸려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의 기도로 이 문둥병은 비로소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여기서 의문을 느끼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별로 잘못한 것이 없을뿐더러 마땅히 할 말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오히려 모세를 두둔하고 문둥병으로 치시기까지 했으니 너무하지 않느냐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견해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당신의 종을 옹호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종의 체통이 서지 않아 당신의 일을 해 나가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기름 부은 종을 그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비방하는 것을 싫어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편 다윗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다윗은 모세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두 분 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지만, 다윗은 그 사명이나 권능이 모세와는 비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왕상3:14)고 말씀할 정도로 다윗을 높이 평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자기 힘을 의지하여 인구 조사를 실시하는 등, 하나님 앞에 적지 않은 범죄를 저질렀으나 하나님은 다윗을 어여삐 보았습니다. 그것은 병에 담을 정도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그 죄를 깊이 뉘우친 소치이기도 하지만,

 

밑에 거느리는 백성들의 순종과 충성에 힘입어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하시고자 한 일을 착실히 완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도 세상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이 점에서 다윗은 행운아였다고 하겠습니다.

 

다윗이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이방 블레셋 군과 대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다윗이 고향의 우물물이 생각나 주위 부하들을 돌아보면서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좀 길어다 줄 수 없을까?” 하고 혼자 말처럼 한 마디 던졌습니다.(삼하23:15)

 

블레셋군은 날카로운 무기를 가진 이스라엘의 오랜 숙적으로 베들레헴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때 세 용사가 선뜻 나서서 블레셋의 감시병과 싸워서 무찌르고 베들레헴 성문 옆의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 다윗에게 바쳤습니다. 임금이 마실 물 한 모금을 떠오기 위해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의 갸륵한 충성을 가상히 여겨 그 물을 마시는 대신 하나님께 드리고 생명을 돌보지 않고 갔던 사람들의 피라고 아뢰었습니다.(삼하23:17) 실로 그 임금에 그 신하라고 하겠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눈에 들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 밑에 이런 신하를 거느렸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독불장군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역사에서도 들어맞습니다.

 

만일 모세가 다윗의 입장에 있고, 다윗이 모세의 입장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양상이 크게 달라져 모세는 성공의 종이 되고, 다윗은 실패의 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종과 백성은 이처럼 긴밀한 함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보내심을 입은 자를 영접하는 것은 보낸 자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였습니다.(13:20) 보내심을 입은 자를 무시하고 보낸 자의 기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