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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6.08.17본문
Part 05. 섭리 안에서
Chapter 47. 성경을 왜곡한 죄
오늘은 이곳 홍성 에덴성회가 어려운 여건 아래서 뜻 깊은 개회식을 맞이한 날입니다.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런 귀한 장소를 마련해 주신 홍성의 모든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이 장소를 통하여 많은 성도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그때그때 형편과 여건에 따라서 변하지만, 주님은 변치 않으시고 우리의 억만 가지 죄악을 용서해 주시면서 여러분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순간에도 우리 주님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시고 이 귀한 하나님의 역사에 부르셔서, 새로운 구원의 방주에 동참케 하여 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여러분이 주 앞에 함께 영광을 돌리는 이 역사는 역대의 선지성인들이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이곳은 우리 주님의 극비에 속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주소입니다. 뭇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적은 이곳 홍성 성도님들은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장차 무엇으로 어떻게 주 앞에 기쁨을 드려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곳곳이 개척되어 이처럼 열매가 맺어지고 헌당예배를 올릴 적마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역사는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서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는 중에 있습니다. 우리 주께서 10여 년 동안 우리 역사를 안팎으로 보살펴 주시고 영육 가운데 아울러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덕택입니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깊이 있게 전개되는 하나님의 역사는 일찍이 없었으며, 또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감람나무라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하나님의 역사가 베풀어지는 가운데, 이미 제2의 역사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2천 년 전에 예고하신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기 때문에, 아무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에 부름을 받은 믿음의 식구들이 실제로 이 역사에 적응하기까지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열매가 맺어져 전도가 되면 그것으로 족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열매를 맺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 열매가 충분히 익는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마당에서 얼마나 많은 참된 열매, 즉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홍성 지역에 이와 같은 성전 개회식을 가짐으로써 앞으로 이곳을 통하여 하나의 기반을 다지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받아 모이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이곳에 모이는 믿음의 식구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곡이 되어 세마포를 입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알곡이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한 단계 깊이 들어가서 우리가 오늘날 지향하는 역사를 다시 한 번 검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한편 예수를 믿으면서도 천당이나 지옥 같은 것은 알 바가 아니고, 다만 살아 있는 동안에 남에게 착하고 선한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큰 섭리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비치기 시작한 것이 앞선 감람나무 역사입니다. 그리하여 천국과 지옥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으면서도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감람나무 역사가 나타나면서부터 비로소 계시록이 어느 정도 인용되고, 천국은 천년세계를 거쳐서 이루어지며, 지옥은 무서운 불 구렁텅이라는 말이 우리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약 30년 동안 감람나무의 역사가 펼쳐지는 가운데, 일반교회에서 배워서 아는 성서의 지식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감람나무 역사 중에서도 알곡을 주님 앞에 거둬들이는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우리의 역사가 알곡을 거두는 역사인가를 성서적인 시각에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계시록에는 주님이 지목하는 어떤 특정한 인물이 나타나서 그가 주님을 위해 움직이는 상태에 따라서 주님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느 교회에서나 다 보지만 계시록은 별로 상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여타 성경과 달라서 도저히 인간의 지능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 쓰여 있는 말씀은 육적인 말씀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말씀이 아니라, 저 세상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에 뭔가 귀중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근래에 와서 앞선 감람나무 역사의 줄기를 타고 뒤를 이어 계시록에 기록된 깊은 하나님의 경륜이 비로소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동안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를 믿어온 수많은 백성들에게는 오늘날 이 단상에서 전하는 주의 근황에 관한 말씀은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전에 큰 은혜를 받은 감람나무의 가지들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생소하게 들려 적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어찌하여 주님은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경륜을 마무리 짓기 위한 숨은 계책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뭇 백성들이 하나님의 크신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앞선 감람나무 역사가 버림받은 연고가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앞선 하나님의 역사는 전 기독교의 핍박 속에서도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습니다. 그 역사는 바로 주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 내린 은총은 주의 은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 속에 이루어져야 할 역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보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결정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우리가 육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앞선 역사에서 은혜 받은 수많은 양떼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위해 충성했습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바쳤습니다. 결혼도 공부도 청춘도 희생하면서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주의 역사에 전력투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늘에서는 이 역사를 지원해 주지 않고 도중에 외면해 버렸을까요?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깨닫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는 그 줄기를 타고 나가는 제2의 감람나무 역사 속에 몸담고 있더라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은 “내가 마지막 역사를 이룰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눅18:8)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은 “마지막 때가 되면 내 이름으로 서편에서 번쩍, 동편에서 번쩍하면서 갖은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고, 내 이름을 빙자하여 예수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너희는 믿거나 놀라지 말라. 나 예수의 이름으로 별의별 장난을 해도 진리는 하나뿐이니, 나머지 것들은 묵살하라.”(마24:23-24)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어느 곳에 가든지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를 지어놓고 교인 몇 명을 팔고 사기도 합니다. 이 정도로까지 기독교가 산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별의별 기적을 다 일으킨다고 떠들어댑니다. 반 점쟁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에 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역사를 사이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2천 년 전의 주님은 알고 있지만, 오늘의 주님은 모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가장 명심해야 하는 것은 계시록에 나와 있는 주님의 안타까운 사정입니다.
계시록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 주님이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신 후 하늘나라에 승천하셔서 영광을 받고 나서 당신의 12제자 중에서 밧모 섬에 귀양 가 있는 요한에게 지시한 말씀입니다.
약 2천 년 전에 주께서 지시한 내용을 우리가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지시는 2천 년 전에 하셨지만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에 지시하신 주님이 오늘날 그것을 이루신다면 지시하실 때보다 이루실 때의 주님의 관심이 몇 배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당시에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인계 받은 다음, 천사들을 통해 지상을 살피시면서 50여 개 교회 중에서 일곱 교회를 택하여 일곱 촛대로 상징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일곱 교회를 얼마나 중요시했는가 하면, 오른손으로 놓치지 않도록 꽉 붙들고 계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일곱 교회에 속한 신도들은 당시에 우리 주님이 눈여겨보시고 특별히 택하신 백성들입니다. 당시에 주님은 이 백성들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기록하게 했습니다. 즉 에베소 교회면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면 서머나 교회에 속한 백성들이 무엇은 잘하고 무엇은 잘못하는가를 일일이 사도 요한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컸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님은 그 백성들에게 요구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백성들 중에서 이긴자가 나타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일곱 교회 중에서 이긴자가 나타나게 되면 내가 맡겨줄 권한이 있다.
이긴자는 이러이러한 권한을 행사할 터인데, 이런 존재를 내가 두 사람 세울 것이다. 이 일곱 교회의 신도들 중에서 두 증거자가 나타나게 되면 이 두 증거자는 권세를 가지고 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계2, 3, 11장 참조)
이것이 기독교의 핵입니다. 그동안 그 존재가 나타나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이나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만이 전 세계에 계속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즉 이 일곱 교회가 뿌리가 되어 로마에 퍼지고, 프랑스에 퍼지고, 미국에 퍼지고 우리 대한민국에도 퍼졌습니다.
그리하여 수천, 수백만의 기독교인 가운데서 두 증인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우리 주님은 약속한 말씀을 시행하셔야 합니다. 즉 2천 년 동안 붙들고 계셨던 일곱 촛대를 놓고 그 대신 두 증거자를 붙들어야 합니다.
만일 지금이 아니고, 5백 년 전이나 천 년 전에 프랑스나 영국에서 이긴자가 나타났다면 그때에도 주님은 일곱 촛대를 놓고 두 증거자를 붙잡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두 증거자, 곧 이긴자가 나타나면 주님은 이렇게 방침을 바꾸는데, 지상에서는 이긴자가 나타나기 전의 주님만 알고, 이 이긴자가 나타나서 방침을 바꾼 주님을 모릅니다.
그리하여 지상에서는 이긴자가 나타나기 전의 예수를 믿는 방법을 그대로 고수합니다. 주님은 일곱 촛대를 붙들고 2천 년 동안 지상에서 순교자를 배출시켜 오시다가 대한민국에서 사단의 훼방을 물리치고 이긴자 감람나무가 등장하게 되니 그 관심도는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시선이 대한민국에 쏠리게 되는 것입니다. 천군 천사의 눈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집회를 열어도 누구도 생수가 무엇이고 이슬 같은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가, 대한민국에 이긴자 감람나무가 나타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일곱 촛대를 그대로 붙들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축복이 두 촛대로 옮겨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2천 년 동안 기다리던 이긴자가 나타나니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은혜를 아낌없이 폭포수처럼 내려주셨습니다. 대한민국에 감람나무가 나타나니 주님은 그 그늘 아래 들어온 9만 명에게 하늘에서는 은혜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전 세계의 수억의 기독교인 중에서 큰 은혜를 받은 감람나무의 가지는 9만 명이라고 나중 역사의 주인공에게 공식적으로 통고했습니다. 감람나무의 그늘 아래 들어온 신도들의 충성은 일곱 촛대를 붙잡고 계실 때 거기 연결된 일반교회의 교인과는 종류가 다릅니다. 열성도 그렇고, 주님을 섬기는 자세부터가 다른 것입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천사는 “온 세상의 주를 모시고 서 있는 두 사람”(슥4:14)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감람나무는 어떤 한 국가를 상대로 역사하는 인물이 아니라, 온 세계의 기독교를 대표하여 움직이는 인물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를 대표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감람나무가 흔들릴 때에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즉 감람나무 체계라고 볼 수 있는 주님의 각본이 순서대로 맞아 들어가지 않을 때에는 감람나무의 역사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만일 감람나무의 역사가 한 국가의 역사에 그친다면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쇠하여도 미국의 기독교는 흥할 수 있고, 이쪽은 망해도 저쪽은 흥하니 괜찮다고 하겠지만, 감람나무는 전 세계 기독교를 대표하여 배출된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감람나무가 흔들리면 기독교 자체가 영적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붙들고 있는 것도 흔들리는 판인데, 붙들고 있지 않는 것은 자동적으로 마귀의 밥이 되게 마련입니다.
주님은 첫째 감람나무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무너져 나갈 우려가 있게 되자, 둘째 감람나무에게 전자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알려 주시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하신 것입니다. 즉 첫째 역사가 무너지기 전에 제2의 역사를 마련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진지를 무너뜨린 마귀는 두 번째 진지도 똑같은 방법으로 무너뜨리려고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작전을 변경하십니다. 그리하여 두 번째 역사는 마귀가 도저히 부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은 인간의 생각이나 두뇌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은 2천 년 동안이나 일곱 촛대를 붙잡고 계시다가 감람나무가 나타나자 그를 통해 주의 깊은 뜻을 밝혀 왔는데, 앞선 종이 처음에는 감람나무가 둘이라고 증거하다가 얼마 후에
“악조건에서만 둘이 된다. 내가 골리앗을 이겼으니 나 혼자 이룬다.”고 아무상관도 없는 골리앗을 들먹여 성경에 분명히 기록된 두 감람나무를 하나라고 단정해 버렸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계시록의 말씀을 변경시켰기 때문에 깨어 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앞선 종은 성경대로, “나는 씨를 뿌리는 종이고, 언젠가는 거두는 종이 나올 것이다.”라고 정직하게 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경을 사실대로 전하지 않고 왜곡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그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손을 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신의 영광에도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 주의 종인데, 감람나무가 둘이라고 증거하고 나서 사람들이 다른 감람나무를 찾게 되자, 자기의 폭발적인 위력이 행세를 못할 것이 두려워 성경을 왜곡시킨 것입니다.
“내가 마지막 종이다. 나밖에 없다.”고 딱 잘라 말하면 따르는 백성들이 두려워하지만, 또 하나가 있다고 말하면 그 다른 하나를 따르려고 할터이므로 일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왜곡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앞선 종은 두 감람나무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 초창기에는 주께서 주신 말씀을 대언했지만, 그 다음 악조건이 어떻고, 호조건이 어떻다고 우길 때부터는 자기 말이 터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즉 그것은 성령의 설교가 아니라 개인의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자기 생각대로 말한다면 진리에서 벗어나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주의 말씀으로 다시 가르치는 사명을 맡은 것이 제2의 종입니다. 앞선 감람나무의 역사에서 처음 3년을 뺀 나머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사업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는 제2의 역사가 10년이 걸려서 겨우 제1단계를 마무리 지은 것입니다. 이제 제1단계를 지나 제2단계의 역사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앞선 역사가 주의 눈 밖에 난 것은 ‘두 증거자’를 하나라고 우긴데 있습니다. 즉 그 역사에 은혜가 없어서도 아니고, 열성이 없어서도 아니고, 교세가 약해서도 아니며, 오직 성경의 핵심을 변경시켰기 때문입니다. 감람나무가 둘이라는 성경 말씀은 호조건, 악조건으로 왜곡되고, 나중에는 악의 악조건, 호의 호조건 하는 이상 야릇한 말들까지도 범람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제2의 역사가 없었던들 그 베일을 벗길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따르는 자들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역사에 부름을 받은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은 알곡을 거두는 때입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유심히 살피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분발을 촉구하면서 말씀을 대신합니다.
홍성에덴성회 개회식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