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4 - Chapter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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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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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4. 길을  찾아서  

Chapter 36. 천국과 어린이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크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니,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18:1-7)

 

주님이 성경에 미리 예언된 대로 이 땅에 오신 후 인류 역사는 연대가 바뀔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으나, 주님에 관한 당시의 세론은 극에서 극을 달려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존재는 아리송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 권능이나 언변으로 보아 이스라엘의 해방자로서 장차 새 나라의 왕이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따르는 사람들이 주로 그러했습니다. 이러한 기대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천국에서 앞자리에 서기 위해 지상에서 되도록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암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주님에게 천국에 가면 누가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느냐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하기는 이들의 입에서 천국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영의 세계에 어느 정도 눈을 떴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등장한 역대 선지자들은 영의 세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오는 육적인 혜택을 중요시하고 사후의 문제는 거의 논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논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논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선지자 자신이 영의 세계를 잘 알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구약 시대 사람들의 신앙 자세는 거의 육적인 것에 국한되어 생시에 벌을 받지 않고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공경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혼과 부활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논란을 거듭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즉 바리새파는 영혼과 부활이 있다고 주장하고, 사두개파는 없다고 맞섰던 것입니다.

 

따라서 똑같이 하나님을 공경하면서도 인간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측과 그렇지 않고 영의 세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측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확신은 갖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양 파의 주장을 모두 벙어리로 만들어 버린 것이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즉 주님이 나타나자 비로소 육적인 가르침에서 영적인 가르침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주님이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천국과 새 생명에 관해 윤곽을 가르치자 사람들은 차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영의 세계를 조금씩 터뜨리는 교수법은 매우 교묘했습니다. 즉 주님은 천국에 대해 직접 가르치지 않고 비유를 많이 들었습니다. 천국은 마치 무엇과 같다는 식으로 변죽을 울리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직접 가르쳐야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작 이사야의 입을 통해 비유로 가르칠 것을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예컨대 유식한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주님을 찾아왔을 때에는 거듭나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했습니다.(3:3)

 

아무튼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천국에 대해 배우고 어느 정도 윤곽이나마 짐작이 갔기 때문에 당치 않은 질문이라도 던질 수 있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면 이런 질문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면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서도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대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18:4) 하고 말씀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에 쐐기를 박은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의도를 모르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니”(18:5)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일종의 권력 남용을 경고하여 일침을 가한 말씀입니다. 당시에 제자들은 일반인들, 특히 어린이들이 주님께 가까이 오는 것을 함부로 제지시키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양떼를 멀리 떼어놓는 것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차지한 직분은 세상 권력과는 다릅니다. 여러분은 직분이 높을수록 한 생명이라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실족시키는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입니다.

 

직분은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자기는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기가 영광을 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늘에 쌓은 공로를 스스로 허물어 버리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믿음의 형제끼리 다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상대방을 이기려는 사람은 으레 지게 마련입니다. 이때 억울하고 분해도 참고 당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묘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뭐 좀 억울하게 당했다 싶으면 상대방을 끌어내려야 속이 시원한 것이 상정입니다. 그러나 이건 패배를 자초하는 길입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교회 일을 부지런히 해도, 형제를 미워하거나 약하게 하여 신앙에 지장을 주면 하늘에서는 그의 공로에서 그만큼 지워버리게 됩니다.

 

은혜 안에서 남을 억울하게 하거나 눈물을 흘리게 하면 반드시 그 화가 장본인에게 미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신앙 가운데서는 하나의 철칙과 같습니다.

 

나는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이 역사 안에서 한 사람도 실족시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유감스럽게도 몇 사람이 나를 등지고 나간 것은 무엇보다도 내 인격이 부족한 때문인 줄 압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한 사람이라도 놓친다면 하나님의 역사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나쁜 감정은 품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할 뿐, 자기 나름으로는 일리가 있습니다. 목수의 아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기가 어려웠듯이, 자연인을 이긴자 감람나무로 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주님도 실족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깊이 생각해 보면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우 깊고 두려운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이 하시는 말씀이니 빈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의 종도 단상에서 말씀을 전할 때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언제나 설교를 마친 후에는 주의 것을 올바로 전했나, 내 것이 섞여 있지 않았나, 하고 반성해 보곤 합니다.

 

나는 하늘의 것을 전할 뿐, 그것을 여러분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습니다. 또 개의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늘에서 일하라는 지시가 없으면 나는 그만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배운 게 있습니까? 연구를 합니까? 우리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입들을 단속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믿음의 형제는 말할 것도 없고, 교역자나 주의 종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해 왔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거의 다 여기에 저촉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공로를 스스로 허무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기에 일찍이 성경도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50:19)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자신이 자라고, 우리의 역사가 발전하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