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5 - Chapter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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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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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5. 섭리 안에서 

Chapter 43. 부활은 육신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부활절이 돌아오면 교회에서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찬양하는 행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부활을 주께서 죽었다가 생전의 모습으로 다시 사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부활이란 과연 육신이 다시 사는 것일까요?

 

부활에 대하여는 자고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주님 이전에는 부활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오랫동안 팽팽히 맞서 왔습니다. 바리새인은 부활을 인정하고 사두개인은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이 무렵에 부활을 몸으로 입증해 보인 분이 주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주님의 부활에 대한 인식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희미한 상태에 있거나 곡해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주님은 생전의 말씀대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제3일만에 살아나(16:21) 제자들 앞에 나타나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20:20) 생선도 잡수셨습니다.(24:42-43) 그래서 사람들은 주께서 육신을 입고 다시 사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상고하여 연결시켜 보면 부활이 육으로의 재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굳게 닫아 건 방에도 자유자재로 출입하실 수 있었습니다.(20:26) 이것은 뼈와 살을 가지고 있는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주께서 나타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도 하였지만, 제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주께서 그들의 눈을 밝혀 주시니 비로소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때 주님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24:13-31) 그런가 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에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동산지기로 오인했습니다.(20:15) 그야말로 변신(變身)이 자유자재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때려도 아프지 않고, 찔러도 피가 나지 않습니다. 바울의 말대로 부활이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고전15:44)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부활이란 우리의 혼과 영이 새 생명체로 재창조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만일 재생이 부활이라면 80세가 된 노인이 죽었다가 부활했을 경우에 80세의 몸으로 재생되어 얼마간 살다가 다시 죽게 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의 무덤을 찾았을 때 세마포 수의만 그대로 남아 있고 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알맹이만 고스란히 없어진 것입니다.

 

부활은 단순한 재생이 아닙니다. 만일 주님이 나사로와 같이 재생되었다면 지금은 나이 2천 세에 가까워 주름살투성이 정도가 아니라, 숨 쉬는 미라로, 알아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부활이란 이렇게 육신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뼈가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살과 뼈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주께서 그렇게 되도록 변신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유령으로 간주할 우려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님의 부활은 인정받지 못하고 제자들은 부활을 증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헛일이 되고 맙니다.(고전15:14)

 

만일 주께서 부활체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눈이 부셔 볼 수 없고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맙니다. 이것은 다메섹 근처에서 바울에게 주님이 나타나자 바울이 한동안 눈이 멀어 버린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9:3-9) 이때 주님은 신령한 부활체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빛으로 계시며, 하나님과 방불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게 하려면 육을 입은 몸으로 변모되어야 합니다. 초림 전에 말씀으로 계실 때의 주님은 신이며, 부활하신 주님도 신이십니다. 신이 육을 입고 잠시 인간이 되어 지상에 오셨다가 다시 신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것은 육을 입은 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길을 열어 놓기 위해서였습니다. 주께서 당신을 이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입니다.(14:6)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죽었을 때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 영을 하늘나라로 데려갈 수 있었던들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그런 곤욕을 치르게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사망 뒤에는 음부가 따르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누가 소유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1:18)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땅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연후의 일입니다. 즉 주께서 그 피 권세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게 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열쇠가 마귀의 손에서 주님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께서 음부에 있는 영을 건질 수 있게 된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